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오징어 게임에 나온 한국 전통놀이, 그 속의 문화 코드

by ina2143 2025. 4. 22.

단순한 놀이일 뿐일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이중성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인기를 견인한 상징적인 장면은 단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세계는 '무궁화 꽃 - 영희'에게 열광했다. 거대한 인형이 돌아보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그 장면은 보면 한국의 시청자들에게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죽음의 공포를 자극했다. 이 게임은 한국 아이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놀이다. 술래가 등 돌리고 외친 후 돌아섰을 때, 움직이는 아이는 탈락하는 간단한 룰이지만, 그 안에는 사회적 메시지가 깊숙이 내포되어 있다.

 

전통놀이

 

이 놀이는 단순히 빠르게 움직이고 멈추는 신체 놀이를 넘어서, 규칙과 규범 안에서 눈치를 보며 ‘타이밍’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이들은 이 놀이를 통해 은연중에 사회적 규율과 질서를 배운다. 어른이 되어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눈치를 보고, 멈추고, 기다리고, 때론 규칙을 어길지 고민하는 자세—는 이 게임의 구조와 닮아 있다.

 

<오징어 게임>은 이 전통놀이를 무대 위에 올려 공포와 생존의 상황으로 확장시켰다. 단순한 어린이 놀이가 생사를 가르는 잣대로 바뀐 그 설정은, 결국 한국 사회의 압박감과 경쟁, 규칙에 대한 복종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조이는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관객들은 이 장면을 보며 향수를 느끼는 동시에 한국 사회의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추억의 놀이에서 생존의 도구로

 극 중에서 진행되는 또 다른 게임은 딱지치기와 구슬치기다. 이 두 놀이는 모두 한국의 어린이들 사이에서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온 놀이지만, <오징어 게임>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재구성된다. 딱지치기는 극 초반 등장하며 참가자를 선별하는 도구로 쓰였고, 구슬치기는 참가자 간의 심리전을 통한 생존 게임으로 변주됐다.

 

딱지치기는 기본적으로 색종이나 종이,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딱지’를 바닥에 내려쳐 상대의 딱지를 뒤집는 놀이이다. 단순한 구조이지만 기술, 힘 조절, 타이밍이 필요한 섬세한 게임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경쟁하며 즐겼던 딱지치기는 누가 더 강한지, 누가 더 잘하는지를 겨루는 일종의 무력 놀이였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이 놀이가 지닌 경쟁성과 타격감을 부각하며, '사람을 때리는' 방식으로 변주됐다. 그 딱지는 종이가 아닌 현실의 통증을 주는 방식으로 치환되어, 단순한 게임이 더 이상 순수하지 않음을 암시했다.

 

구슬치기는 조금 더 감성적이다. 주어진 10개의 구슬을 가지고 제한된 시간 안에 상대방의 구슬을 모두 빼앗는 것이 목표인 이 게임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술래잡기처럼 빠르게 진행되는 게임이 아니라, 심리와 전략, 말의 힘이 결정적이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이 놀이가 두 사람 사이의 관계성과 인간성, 감정이 얼마나 잔인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결국 누군가는 이겨야 하고,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는 설정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한국인의 공동체 정신이 어떻게 극한 상황에서는 파괴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줄다리기와 유리다리 건너기: 협동에서 경쟁으로

 줄다리기는 한국의 전통놀이 중에서도 공동체성과 협동심을 가장 잘 나타내는 놀이다. 특히 정월대보름 같은 민속 명절에는 마을 단위로 줄다리기 행사를 벌이곤 했다. 이 놀이의 목적은 단순한 승부가 아니라, 주민들 간의 단합을 기리는 데 있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에서 줄다리기는 더 이상 ‘함께 이기는 놀이’가 아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끌어내려야만 하는 극단적 상황으로 탈바꿈한다.

 

줄다리기 게임 에피소드에서는 한 팀이 낙하하여 모두 죽는 설정이 더해지면서, 협동의 가치가 생존의 무기로 변질된다. 극 중 등장인물들은 체력적으로 불리한 팀에서도 전략과 협력으로 승리를 만들어내지만, 그 과정에서 줄을 당기는 행위는 곧 누군가의 죽음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줄다리기의 의미가 '죽음의 줄다리기'로 바뀐 이 장면은, 협력조차 경쟁의 수단이 되어버린 사회를 풍자한다.

 

반면, 유리다리 건너기는 한국 전통놀이라기보다 새로운 게임이지만, 그 방식은 어릴 적 즐겼던 얼음땡, 징검다리 놀이 등에서 차용된 형식이다. 일정한 규칙은 있지만 정답이 보이지 않으며, 매번 앞선 사람의 행동이 기준이 된다. 결국 이 장면은 ‘선택’과 ‘희생’의 문제를 던진다. 누군가는 건너기 위해 누군가가 먼저 밟아봐야 하고, 그 결과는 곧 생존과 직결된다. 이는 실제 사회 속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존재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누군가의 실패 위에 다른 이의 성공이 가능하다는 냉정한 현실은 이 게임을 통해 더욱 극명해진다.

오징어 놀이, 한국 사회의 은유적 축소판

 <오징어 게임>의 마지막, 결승전이 되는 게임은 제목 그대로 ‘오징어 놀이’다. 이 놀이는 1970~80년대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매우 인기 있던 게임으로, 바닥에 오징어 모양의 선을 그리고, 공격팀과 수비팀이 역할을 나눠 몸싸움을 벌이는 규칙이다. 다소 복잡한 규칙과 강한 신체 접촉이 특징이며, 이겨야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구조 때문에 과거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경쟁심을 자극하는 놀이였다.

 

작품에서 이 오징어 놀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남자 주인공 둘 사이의 최종 승부로 등장한다. 단순한 몸싸움의 놀이가 아니라, 우정과 배신,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절망이 겹쳐지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두 사람 모두 이겨도 기쁘지 않고, 져도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이긴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되묻게 만든다.

 

사실 오징어 놀이는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을 담고 있는 은유적 구조이기도 하다. 출발선이 같지 않고, 중간에 탈락하기 쉽고, 끝까지 가야지만 인정받는 시스템. 이 구조는 학교, 회사, 사회 전반에 흐르는 경쟁주의와 닮아 있다. <오징어 게임>은 어린 시절 순수하게 즐기던 오징어 놀이의 구조를 통해, 어른이 된 후에도 벗어날 수 없는 경쟁의 굴레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놀이가 놀이가 아닌 시대, 그럼에도 기억하고 싶은 전통

 <오징어 게임>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한국 시청자들에게는 단순한 서바이벌 드라마 이상의 감정을 남겼다. 그것은 그 안에 등장하는 놀이들이 ‘우리의 어린 시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놀이들이 단순한 추억이 아닌,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었기 때문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오징어 놀이’까지, 그 안에는 한국인의 삶의 방식, 집단주의적 문화, 사회적 경쟁, 그리고 공동체와 개인 사이의 충돌이 모두 녹아 있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놀이를 통해 사회를 진단하고, 동시에 그 놀이의 순수성을 회복하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지도 모른다.

 

비록 놀이가 생존의 수단으로 바뀌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놀이가 원래는 웃음과 함께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전통놀이는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문화와 철학을 되새기며 재해석할 수 있는 자산이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은 그런 가능성을 세계 무대에서 보여준 하나의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