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을 끝자락, 느린 행렬이 시작될 때
아득한 어느 마을의 새벽.
바람이 산 너머에서 내려오고, 흙길 위에 발자국이 차곡차곡 새겨진다.
그 가운데, 무언가 묵직한 것이 움직인다.
흰 천으로 감싸인 관이 나무 상여에 실리고, 그 앞에선 사내들이 일정한 박자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에헤이야데야~ 나가세~”
이것이 바로 ‘상여소리’다.
사람 하나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길목에서, 이승과 저승 사이를 잇는 소리.
울음인지 노래인지, 주문인지 탄식인지 모를 그 목소리는
마치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은 이를 품에 안고, 다시 태우는 의식처럼 들린다.
상여소리는 단순한 노동요가 아니다.
죽음을 맞이한 이와, 그를 보내는 사람들의 감정이 뒤섞인
한 편의 서사이고, 공동체의 기도이며, 살아남은 자들의 슬픈 축복이다.
장례 행렬은 조용하지 않았다.
되려 상여소리로 가득 찼고, 그 소리에는 수많은 감정과 서사가 실려 있었다.
2. 소리로 짜는 저승길 – 이별을 견디는 방식
한국의 전통 장례는 철저히 공동체 중심이었다.
죽음은 가족만의 일이 아니었다.
동네 어른들과 이웃이 함께 상여를 메고, 사립문을 열고, 마을을 걸어 나갔다.
이때 들려오는 상여소리는 이별의 슬픔을 넘어서기 위한 일종의 정신적 장치였다.
상여를 메고 걷는 동안, 무거운 침묵은 어울리지 않았다.
대신 소리로 그 슬픔을 삭이고, 소리로 상처를 나눴다.
“에헤이야~ 나가세~”
이 소리는 단순한 추임새가 아니었다.
소리의 반복은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주문이었고,
메는 자들의 감정이 터져 나오는 창이었다.
상여소리는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의 장에서는 격정적인 소리로
노년의 고인을 보낼 때는 담담하고 깊은 음으로 불렸다.
이별의 무게와 맥락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래서 듣는 이마다 상여소리에서 자신의 상처를 떠올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눈물을 흘렸다.
음악이 없던 시절, 이 소리는 곧 음악이었고, 애도였으며
죽음이라는 커다란 침묵 속에 살아 있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건넬 수 있는 말이었다.
말 대신 소리를 건네며, 고인의 등을 밀어 저승길 끝자락까지 데려다주는 것이다.
3. 상여소리는 공동체의 노래였다
상여소리는 장례식의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을 공동체 전체가 수행하는 진혼의 의식이었고,
그 속에는 노동, 애도, 예술, 종교적 믿음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죽음을 앞에 둔 자들이 모여 서로의 어깨를 빌리고, 목소리를 합쳐 부른 이 노래는
결국 ‘함께 슬퍼하는 기술’이었다.
사람은 혼자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상여를 메고, 누군가는 곡을 하고,
또 누군가는 소리꾼이 되어 그 길을 음악으로 수놓았다.
죽음 앞에서 공동체는 더욱 단단해졌다.
상여소리를 부르던 그 목청은 고인 하나만이 아니라,
삶의 유한함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를 향한 것이었다.
상여소리에는 종종 해학과 풍자도 섞였다.
죽음을 비극으로만 여기지 않고, 살아 있는 자들이 덤덤하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그 안에 있었다.
삶이란 결국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고,
그 마지막을 함께 걷는 길에서 우린 모두 같은 인간임을 깨닫는다.
상여소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울림이었고,
그 울림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제는 상여도, 그 소리도 보기 어렵지만
그것이 사라졌다고 해서 우리 안의 애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애도의 방식이 침묵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상여소리는 그 침묵을 소리로 바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만들어냈던 지혜였다.
4. 소리를 기억하는 사회 – 상여소리의 미래
오늘날 상여소리는 거의 사라졌다.
장례는 조용하고 정돈된 예식이 되었고,
음악은 기계에서 재생되며, 슬픔은 개인의 몫이 되었다.
공동체의 슬픔이 해체되며, 상여소리 역시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 있다.
하지만 몇몇 지역에서는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상여소리보존회가 활동하거나, 민속축제에서 그 소리를 재현하고 있다.
그 소리는 이제 단지 죽음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옛 마음’을 기억하게 만드는 문화유산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상여소리는 어떤 의미일까.
단지 옛 노래? 구슬픈 장례의 잔상?
아니면, 잊혀진 공동체 정서의 한 조각?
나는 상여소리를 ‘함께 슬퍼하는 법’을 가르쳐준 노래라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는 죽음을 멀리하고, 슬픔을 혼자 감당한다.
그러나 애도란 원래 함께 하는 것이었고,
상여소리는 바로 그 함께함의 증거였다.
죽음 앞에서도, 사람들은 소리를 냈다.
노래를 부르며, 웃으며, 울며, 걸었다.
그렇게 우리는 누구도 혼자 보내지 않았다.
상여소리는 죽은 이를 위한 것이면서,
결국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소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