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에 남겨진 시간 – 발효 음식과 한국인의 인내
장독대가 말을 걸어온다어릴 적, 시골집 마당 한쪽을 차지하던 장독대는 마치 작은 성곽 같았다. 키 큰 독, 아담한 독, 옹기종기 모인 독들이 햇살을 머금고 서 있는 모습은 제법 위엄마저 느껴졌다. 그 곁을 지나칠 때면, 독들 사이로 은은히 퍼져 나오는 간장 냄새, 된장 냄새, 고추장의 깊은 향이 코끝을 스쳤다.나는 그 냄새 속에서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시간의 냄새였는지도 모른다. 무수한 계절을 지나며 묵묵히 익어가는 것들, 조급해하지 않고 제 속도로 변해가는 것들. 장독대는 그렇게 조용히 시간을 품고 있었다.어느 날 문득, 바람에 흔들리는 장독대 뚜껑 소리를 듣고 문득 멈춰 섰다.뚜껑 아래에서는 무수한 발효의 세계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생명은 그곳..
2025. 4. 15.